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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이야기

프테리스 고사리

Pteris cretica

프테리스

주말에는 물을 못 준다는 생각에 금요일이면 걱정이 되는 고사리가 있다. 사내 꽃 기부 행사로 열린 플라워 마켓에서 오천 원을 주고 데려온 아이다. 아름다운 색과 향으로 미모를 뽐내는 꽃다발용 꽃들도 많았지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구불구불한 물결 모양 잎을 가진 프테리스 고사리였다. 잎 둘레를 물감으로 덧칠한 것처럼 가장자리만 조금 더 진한 초록이다. 화분을 감싸고 있던 비닐을 벗기고 나니 얇고 기다란 줄기 몇 개가 곡선을 그리며 아래로 풀썩 내려와서 더 멋스러운 모양이 되었다. 이전부터 내 방에 식물 하나를 초대해 볼까 생각해왔지만, 식물을 산 것도 내가 직접 키우는 것도 이제서야 처음이다. 식물에 무지한 내가 햇볕이 잘 들지 않는 방 안에서 홀로 키우다가 미안한 마음만 들 것 같아 매번 주저했는데 사무실에서 키워볼 작정으로(공동 육아) 용기 내어 구매하게 되었다. 내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면 말려주고 도와줄 식물 전문가 플로리스트 자격증이 있다. 가 내 옆자리에 앉아 있으니까!

프테리스 고사리는 반음지 식물로 자연광이 없어도 잘 자란다. 대신 물을 좋아해서 하루 이틀에 한 번, 화분 구멍으로 물이 나올 때까지 충분히 흙을 적셔 주어야 한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고사리에 물부터 주고, 햇빛을 좀 즐길 수 있도록 두세 시간 정도 통창이 있는 라운지 공간에 둔다. 점심 먹기 전에 다시 내 자리로 가져와 나도 초록을 좀 즐긴다. 데려온 초반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고사리 물 주어야지 생각부터 났다. 잎 하나하나마다 손가락으로 정성스레 물을 묻혀 쓰다듬으며 식집사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여유가 없어지면 문제가 생겼다. 조금 늦게 일어나서 정신없이 출근하다 보면 아침에 물 주기를 잊기도 하고, 오전에 밀린 업무를 부랴부랴 해치우다가 라운지에 두고 온 고사리를 까먹어서 다음날에 도로 가져오기도 했다. 그래서 잎 몇 군데에 작은 동그라미 모양의 탄 자국이 생겼다. 고사리는 물이 부족하거나 직사광선을 너무 오래 받으면 잎이 마르면서 빵 부스러기처럼 끝이 조금 타들어간다. 나는 못된 식집사야 자책하며 정신 차리고 분무기를 주문, 그리고 깨달았다. 식물이 여유를 선사한다는 뜻은 식물이 사람, 너에게 여유를 줄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여유를 다오, 좀 만들어서 바치거라 하는 것이란걸. 기쁜 마음으로 한 잎 한 잎 물을 묻혀줄 여유를 창조해야 한다. 그러려면 아침에 조금 더 일찍 일어나야 되겠고, 나는 고사리 덕분에 서두르지 않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겠다.

벌써 두 달을 내 책상에서 함께하고 있는 고사리는 다행히 잘 자라고 있다. 요 며칠 팀원분들께 물 주기를 부탁하고 출장과 휴가를 다녀오느라 오랜만에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새로 난 줄기들이 쌀알 한 톨만큼 조그만 잎을 달고 영차영차 치솟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풍성해진 모양새라 내 모발이 늘어난 것처럼 마음이 뿌듯하다. 가상 세계(컴퓨터 화면)만 오래 들여다보게 되는 시야에 작고 신비한 연둣빛 자연이 걸쳐 있다는 것만으로 기분은 한결 싱그러워진다. 맞아, 나도 이렇게 살아 있지 생명을 체감하기도 한다. 두 갈래로 갈라지는 것 없이 온전히 하나인 줄기가 위로도 옆으로도 아래로도 아무렇게나 구불구불 뻗어 나가는 모습이 자유로워 보여서 좋다. 이름은 짓지 않았다. 고사리 너는 그냥 고사리. 내 것이라고 이름 붙여줘 봐야 잎을 내뿜는 것 외엔 무심한 너는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을까. 고사리는 고사리대로 쑥쑥 크기만 하렴 하고. 곧 월요일 아침이다. 고사리 돌보는 걸 잊지 않도록 다시금 상기하며, 주말 동안 못 준 물 담뿍 주려면 일찍 잠에 들어야지.

프테리스고사리


프테리스고사리
물뿌리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