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물을 못 준다는 생각에 금요일이면 걱정이 되는 고사리가 있다. 사내 꽃 기부 행사로 열린 플라워 마켓에서 오천 원을 주고 데려온 아이다. 아름다운 색과 향으로 미모를 뽐내는 꽃다발용 꽃들도 많았지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구불구불한 물결 모양 잎을 가진 프테리스 고사리였다. 잎 둘레를 물감으로 덧칠한 것처럼 가장자리만 조금 더 진한 초록이다. 화분을 감싸고 있던 비닐을 벗기고 나니 얇고 기다란 줄기 몇 개가 곡선을 그리며 아래로 풀썩 내려와서 더 멋스러운 모양이 되었다. 이전부터 내 방에 식물 하나를 초대해 볼까 생각해왔지만, 식물을 산 것도 내가 직접 키우는 것도 이제서야 처음이다. 식물에 무지한 내가 햇볕이 잘 들지 않는 방 안에서 홀로 키우다가 미안한 마음만 들 것 같아 매번 주저했는데 사무실에서 키워볼 작정으로(공동 육아) 용기 내어 구매하게 되었다. 내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면 말려주고 도와줄 식물 전문가 플로리스트 자격증이 있다. 가 내 옆자리에 앉아 있으니까!
프테리스 고사리는 반음지 식물로 자연광이 없어도 잘 자란다. 대신 물을 좋아해서 하루 이틀에 한 번, 화분 구멍으로 물이 나올 때까지 충분히 흙을 적셔 주어야 한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고사리에 물부터 주고, 햇빛을 좀 즐길 수 있도록 두세 시간 정도 통창이 있는 라운지 공간에 둔다. 점심 먹기 전에 다시 내 자리로 가져와 나도 초록을 좀 즐긴다. 데려온 초반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고사리 물 주어야지 생각부터 났다. 잎 하나하나마다 손가락으로 정성스레 물을 묻혀 쓰다듬으며 식집사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여유가 없어지면 문제가 생겼다. 조금 늦게 일어나서 정신없이 출근하다 보면 아침에 물 주기를 잊기도 하고, 오전에 밀린 업무를 부랴부랴 해치우다가 라운지에 두고 온 고사리를 까먹어서 다음날에 도로 가져오기도 했다. 그래서 잎 몇 군데에 작은 동그라미 모양의 탄 자국이 생겼다. 고사리는 물이 부족하거나 직사광선을 너무 오래 받으면 잎이 마르면서 빵 부스러기처럼 끝이 조금 타들어간다. 나는 못된 식집사야 자책하며 정신 차리고 분무기를 주문, 그리고 깨달았다. 식물이 여유를 선사한다는 뜻은 식물이 사람, 너에게 여유를 줄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여유를 다오, 좀 만들어서 바치거라 하는 것이란걸. 기쁜 마음으로 한 잎 한 잎 물을 묻혀줄 여유를 창조해야 한다. 그러려면 아침에 조금 더 일찍 일어나야 되겠고, 나는 고사리 덕분에 서두르지 않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겠다.
벌써 두 달을 내 책상에서 함께하고 있는 고사리는 다행히 잘 자라고 있다. 요 며칠 팀원분들께 물 주기를 부탁하고 출장과 휴가를 다녀오느라 오랜만에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새로 난 줄기들이 쌀알 한 톨만큼 조그만 잎을 달고 영차영차 치솟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풍성해진 모양새라 내 모발이 늘어난 것처럼 마음이 뿌듯하다. 가상 세계(컴퓨터 화면)만 오래 들여다보게 되는 시야에 작고 신비한 연둣빛 자연이 걸쳐 있다는 것만으로 기분은 한결 싱그러워진다. 맞아, 나도 이렇게 살아 있지 생명을 체감하기도 한다. 두 갈래로 갈라지는 것 없이 온전히 하나인 줄기가 위로도 옆으로도 아래로도 아무렇게나 구불구불 뻗어 나가는 모습이 자유로워 보여서 좋다. 이름은 짓지 않았다. 고사리 너는 그냥 고사리. 내 것이라고 이름 붙여줘 봐야 잎을 내뿜는 것 외엔 무심한 너는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을까. 고사리는 고사리대로 쑥쑥 크기만 하렴 하고. 곧 월요일 아침이다. 고사리 돌보는 걸 잊지 않도록 다시금 상기하며, 주말 동안 못 준 물 담뿍 주려면 일찍 잠에 들어야지.
고사리와 골골이
골드 셀렘
Philodendron warscewiczii 'Aurea Flavum'
고사리 안부에 대한 걱정은 준에게 전염되었다. 경희야, 경희 월요일에 회사 안 가는데 고사리는 어떡해? 삼 일이나 물을 못 주잖아. 매번 팀원 분들께 부탁드리기 미안하면 식물 키우기 메이트라도 만들어서 같이 돌봐 주는 것 어때? 식물을 두 개나 키우는 기분을 느낄 수도 있잖아. 팀원 분들은 고사리 키우기가 공동육아라는 사실을 이미 받아들이고 계신다. 깜박하고 물을 안 주어 고사리가 시들거나 혹여 죽어 버리기라도 하면 내가 마음 아파할까 봐 같이 신경 쓰게 된다는 준. 준은 식물이란 것에 흥미나 관심을 가질 일이 전혀 없었는데, 내가 고사리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호기심이 생겼는지 플랜트 숍에 가자는 말을 먼저 꺼내었다.
우연히 들른 플랜트 숍에서 어머니께 드릴 다육식물을 고르겠다고 사장님께 이런저런 식물을 추천받더니, 손에 들고나온 것은 존재감을 강하게 뿜어내는 골드 셀렘이었다. 잎이 너무 예쁘다며 꿀 떨어지는 눈빛을 장착한 준은 그에게 이미 반한 눈치. 이렇게 금세 빠져들게 될 줄이야! ‘필로덴드론 바르세비치 아우레아’라는 긴 학명을 가진 골드 셀렘은 내가 봐도 정말 아름다웠다. 형광빛에 가까운 신비한 잎의 색, 손바닥만큼 넓은 잎의 크기에 절로 눈이 갔다. 만져보니 피부는 여리고 얇았는데, 튼튼하게 뻗은 줄기가 듬직하기 그지없었다. 가는 길에 혹여나 골골이(골드 셀렘)를 다치게 하지 않을까 품에 꼭 안고 애지중지하는 준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 골골이를 쳐다본다며 뿌듯해했다. 그런 그를 보니 드는 귀여운 상상. 반려동물을 산책시킬 때 쏟아지는 관심에 내 새끼 예쁘지 어깨가 으쓱할 것처럼,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신 반려 식물 하나씩 손에 들고 산책(광합성)시키는 사람들과 서로 자기 애(식물) 미모를 은근히 자랑하는 일상도 올 수 있지 않을까?
골드 셀렘은 다른 필로덴드론 류의 식물에 비해 잎이 얇기 때문에 온도와 습도, 물의 양을 세심하게 조절해 주어야 한다. 고사리처럼 반음지 식물이라 간접광이 좋지만, 남아메리카 열대우림 출신으로 차가운 온도에 예민하다. 물은 한 달에 두 번 정도로 많이 주면 안 되고, 대신 촉촉하게끔 잎에 분무기로 물을 뿌려 주면 좋다. 천안에 계시는 준의 어머니께 골골이를 드리려면 2주 동안은 준의 집에 두고 키워야 한다. 골드 셀렘이 추워할까 봐 에어컨 트는 것도 망설이는 준은 21도에서 25도 사이면 괜찮다. 벌써 이름까지 지어 놓고서 과연 어머니께 드릴 수 있을는지. 부디 고사리와 골골이에게 안 골골한 매일이 오기를.
씨앗에서부터 시작하는 식물 경험을 선사합니다. 아주 작은 단위의 생명을 심고, 깨우고, 어둠 속에서 때를 기다리다 흙을 뚫어내는 대견함을 지켜볼 수 있어요. 초심자도 씨앗 생활에 쉽게 도전해볼 수 있도록 친절한 도구와 가이드를 함께 제공합니다.
내 하루의 파티오
파티오라금
Euphorbia tirucalli
(Pencil Cactus)
오늘 나는 침대에서 오래간만에 늑장 부렸다. 큰 창으로 하얀 하늘이 가득한데도 가만히 눈을 감았다 떴다 누워만 있었다. 준의 전화에 느적느적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고 무슨 옷을 입을까 평소에 잘 입지 못 하는 옷 입고 멋을 좀 부려볼까 하다가 결국은 매일 입는 편안하고 따스한 옷을 입었다. 오늘 하루는 정말 소중하게 보내야지. 오늘이 지나면 무려 일주일 간의 긴 출장이 기다리고 있고, 주말과 집은 나에게 더욱 애틋한 것이 되었다.
선물 받았는데 아직 한 번도 들지 않은 새 가방에 좋아하는 책 한 권, 읽던 잡지 한 권, 일기장과 작은 생각 노트, 펜 하나와 연필 한 자루, 올리브 향이 나는 향수를 챙겨 넣고는 세탁소부터 갔다. 오래 미뤄두었던 운동화 세탁을 이제는 정말 챙길 때였다. 그리고는 브런치를 먹으러 근처의 카페로 갔다. 카페를 검색했을 때 이런 공간이 있는 것만으로 이 동네에 이사 올 이유는 충분하다는 후기가 있어 신뢰가 갔다. 나도 집을 구하러 다닐 때 카페 하나로 동네 전체에 사로잡히곤 했다. 동네를 대변하는 듯한, 동네의 분위기가 되어주는 듯한 공간을 우연히 만나면 금세 사랑에 빠지게 된다. 오늘 방문한 카페는 이웃 주민들이 정말 편안하게 오가는 장소라는 것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갓 구운 빵 냄새와 커피향이 솔솔하고, 창으로는 잎사귀들이 가득. 맞은편에 앉으신 아주머니가 두 눈을 꼬옥 감고 고개를 끄덕끄덕하시는 것이 졸고 계시는 것처럼 보이기보다는 리듬을 타는 것처럼 보였다.
오후에는 책방에 들러 마음에 드는 책 두 권을 사고 근처의 식물 가게에 갔다. 사실 오늘 하루의 가장 커다란 미션이 바로 집에 둘 식물을 사는 것이었다. 플랜트 숍에 도착해 찬찬히 둘러보던 와중 빼죽하게 줄기를 내고 있는 파티오라금에게 눈길이 갔다. 줄기의 끝에는 아주 작은 연둣빛 잎이 귀엽게 나고 있었다. 파티오라금의 학명은 유포르비아 티루칼리. 길쭉하고 단단한 줄기 덕에 연필 선인장이라고도 불린다. 다육식물이라 물을 많이 주면 안 돼요. 고사리와는 다른 직선적인 매력에 이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녀석이었는데, 물을 가끔 주어도 괜찮은 식물이라길래 바로 데려가기로 결심했다. 파티오라금을 들고 기분좋게 가게 밖으로 나오자마자 빗방울이 떨어졌다. 역까지 거리는 꽤 되는데 근처에 우산을 파는 편의점은 없고, 입고 있던 가디건 안으로 그를 우선 피신시켰다. 빗물에 푹 젖어버리면 어쩌지 노심초사하며 역까지 잰걸음. 파티오라금은 과습에 취약하다. 물은 10일에 한 번 정도, 속흙이 마르거나 줄기가 힘없이 쪼그라들 때 주면 된다.
집으로 돌아와 햇빛을 좋아하는 파티오라금에게 침대맡 창가 자리를 선사했다. 다행히 그에게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고, 머리맡에 초록 몸이 보이는 풍경이 얼마나 보기 좋던지. 커다란 창과 심적 여유가 있어 나는 드디어 식물을 집안에 들일 수 있게 되었다. 식물은 무슨, 나는 나부터 잘 키워야 돼. 볕이 잘 들지 않는 좁은 방 안에서 나 하나 살기도 힘든데 식물의 삶까지 책임진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이제는 나의 집에도 잎과 줄기, 생명이 자란다. 창으로는 식물에게, 그리고 나에게 미안하지 않을 만큼 충분한 볕이 든다. 파티오가 있음으로써 나의 집을 사랑할 이유는 하나가 더 늘었다. 나도 이 집에 온지 한 달도 안 되었어. 같이 잘 살아보자. 영어로 파티오(Patio)는 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테라스 정원이나 중정을 뜻한다. 내 파티오라금 역시 아늑한 나만의 장소에서 자연을 관찰하고 만끽할 수 있게 해 주기에 이름을 파티오로 지었다. 파티오라금의 파티오가 Patio에서 유래한 것은 아니다. 나의 아침과 저녁에 파티오가 함께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이렇게 마음이 가는 것들을 내 땅에 심으며 살아야지. 그러면서 나도 한 뼘 한 뼘 자랄 수 있을 테다.
파티오와 페페 3세
필레아 페페로미오이데스
Pilea peperomioides
(Chinese money plant)
파티오에게 친구가 생겼다. 동글동글한 잎이 사방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자라는 필레아 페페로미오이데스이다. 동그란 잎 모양으로 Chinese money plant, UFO plant, Pancake plant 등의 귀여운 별명을 여럿 가졌다. 미국에서는 Pass-it-on plant, 나눔 식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식물이 어느 정도 자라면 같은 화분에서 새로 자라는 새끼 페페를 주변에 쉽게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페페 3세 역시 엄마 페페의 3대째 자손이다. 페페 3세는 우리 집에 놀러온 채에게 선물받았는데, 우연히도 같이 놀러온 수 역시 채에게 줄 괴마옥파인애플을 닮은 작은 다육식물 을 들고 왔다. 문득 내 친구들이 이런 애들이라는 것이 좋았다. 한 손에 식물이 담긴 가방을 둘 다 덜렁덜렁 들고와서는 고마워 고마워하며 나누어 가지는 게 너무 귀엽잖아.
좀 더 본격적으로 내 친구들 자랑을 해보자면, 채는 자기가 줄 수 있는 것은 뭐든지 간에 최선을 다해 주는 아이다. 이번 집들이에서만 해도 그렇다. 뻔뻔한 집주인(나) 때문에 집들이에서 음식을 얻어먹지는 못할망정 출장 요리사가 되었는데, 파스타를 만들어 준다고 마늘, 버터, 치즈, 치즈 가는 도구, 심지어 으깬 통후추까지 비닐팩에 포장해서는 두 시간 반 걸려 우리 집까지 와주었다. 맛은 또 얼마나 훌륭한지 모른다. 매번 채가 만든 음식 사진을 보면서 왜 요리사 데뷔를 안 하나 궁금했는데, 이번에 맛을 보고 채는 정말 요리와 관련한 일을 해도 크게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수에게서는 아주 멋진 가구를 선물받은 일이 있다. 내 침대맡에 든든하게 자리한 사이드 테이블 겸 수납 가구인데, 견고한 오크목에 앞면은 라탄 케인으로 장식되어 더 내추럴한 무드를 가졌다. 한때 목공방에 다니던 수가 집에 책을 아무렇게나 쌓아두고 있던 나를 위해 직접 만들어서 선물해 주었다. 이전에 집을 그리고 나를 어느 정도 내버려 둔 나는 수의 자취방을 보면서 많이 반성하였다. 수의 집은 모두 수의 손에서 나온 목가구와 뜨개 소품으로 가득하다. 정직한 시간과 손때가 깃든 물건으로 채워진 수의 공간은 얼마든 깊고 아름답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나는 아무래도 받기만 하는 사람인 것 같네. 채와 수를 포함하여 나는 언제나 내 주변의 친구들로부터 배우고 받는다. 이 레터의 경우는 진이 재촉해 주었다. 뉴스레터 같은 것 써 봐 경희야! 나 근데 자신 없는데. 에이 뭐래 너 이거도 잘 하고 저거도 잘 하잖아. 그냥 하는 말이래도 좋다. 정말 해볼까? 하게 된다. 그러면 나도 친구들에게 무언가 멋진 걸 내놓으라고 간간이 귀찮게 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친구들의 소중한 애정과 관심, 손 내밀어 주는 마음이 있어 종종 빼죽한 나는 귀퉁이가 둥글어진다.
내 창가에 빼죽한 파티오와 둥글한 페페 3세가 나란한 모습이 재미있고 귀엽다. 파티오는 파티오대로 길쭉하고 시원스러운 매력이 있고, 페페는 페페대로 친화력 좋고 사랑스러운 매력이 있다. 파티오는 페페처럼 보다 풍성하게, 페페는 파티오처럼 보다 기세 좋게, 서로 좋은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난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정반대의 얼굴을 가졌지만 아무튼간에 둘이 함께 있으니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나의 공간은 풍요로워진다.
친구들의 반려식물
지혁의 몬스테라 알보
한국에서 자취를 시작하고 함께한 친구예요. 바빠서 애정을 많이 주지 못해도 꿋꿋하게 제 책상 한편을 지키면서 기다려주고, 많은 번식으로 소중한 가족, 친구들에게 나누어주는 등 저에게 많은 은혜를 줍니다. 하얀색이 섞인 잎과 초록색 잎이 사이좋게 한 번씩 번갈아 나오고, 이미 있던 잎에도 햇빛이 가길 바라는 마음인지 5~6번째 잎부터는 잎이 갈라져서 나오는 배려심도 있어서 제가 많이 배우고 더 애정이 가는 친구입니다. 앞으로도 쭉 삶을 같이하고 싶은 가족입니다.
수연의 히피 (스프링 골풀)
침대 옆에 두고 가꿉니다. 히피라는 이름처럼 잎이 파마한 것처럼 꼬불꼬불해요. 저도 히피펌 하고 싶거든요? 그래서 애정합니다. 여행을 다녀오느라 잎을 못 잘라줘서 잎이 무거운지 축 내려앉았어요. 이 모습도 나름 매력있어요. 물을 주는데 요새 잘 안 먹고 뱉어서 걱정이랍니다. 꿀팁 있으면 알려주세요.
예림의 예림몬스테라 (몬스테라)
21년 3월부터 지금까지 키우고 있는 예림몬스테라… 키가 나보다 커졌다. 분갈이하기 겁나는 사이즈… 봄마다 새잎을 내어줘서 고마운 아이. 신혼집에 데려갈 거라 열심히 키우는 중… 우리집 베란다 터줏대감..♡ 시원한 찢잎이 매력적인 아이… 흔하지만, 우리집 몬스테라가 가장 파릇하고 이쁘다고 생각한다 ㅎㅎㅎ
일규의 파키라
색깔이 너무 예뻐. 다른 나무보다 연둣빛이 너무 고와. 처음에 갓 나올 때 너무 예뿌고 조금 지나면 진해지는데. 라인감이 있어서 고급지고 예쁘지. 내가 정말 많이 죽였어. 너네 아빠가 업소용 화분을 자꾸 가져와서 내가 어쩔 수 없이 키우면서 다 죽였는데 그걸 자양분 삼아 어떻게 물 주는지 이제는 알지. 원하는 대로 모양을 잡으려고 철사를 사서 꼬아놨어. 예쁘라고. 그냥 모양을 잡으면 부러지니까. 이렇게 모양을 잡고 한 일 년 정도 두면 이렇게 자라.
준희의 골골이 (골드 셀렘)
처음 본 순간 자태에 반해버린 골드 셀렘입니다. 형광색을 지닌 화려함과 쌜죽한 각선미가 매력이고, 자연사(?)할 때까지 오래 살라는 의미와 반의적 표현으로 '골골이'로 지었어요. 식물을 처음 키워본 저에겐 물 주는 법도 힘들었어요. 물을 듬뿍 주라는데 듬뿍이 얼만큼인지,, 새벽에 헤매면서 조금씩 물을 줬더니 어느새 2시간 동안 물을 줬습니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져서 손가락으로 흙만 만져봐도 바로 골골이의 상태를 알 수 있어요.
채린의 칼라데아
제가 처음 제 돈을 주고 산 식물입니다. 엄마가 정원사라고 불릴 정도로 작은 아파트에서 약 200개의 화분을 키우는 식물 광인인데, 아무래도 엄마 감성의(?) 식물들이 별로 이쁘지 않다고 생각하여.. 서울 읍내에서 오로지 외형만 보고 산 식물입니다. 자세히 보면 줄무늬는 핑크색이고, 잎 뒷면은 자주색입니다. 멋지죠? 정원사님 보호하에 2년 동안 무탈하게 쑥쑥 자라고 있습니다.
올리브와 평화의 시간
올리브나무
Olea europaea
올리브가 죽었다. 올리브에게, 올리브를 선물해준 친구에게 죄송합니다. 물도 때맞춰 주고 햇빛도 잘 쐬 준 것 같은데 어느새 잎이 바싹해지더니 돌돌 말려들었다. 사진 한 장 찍어주지 못했는데 이유도 모른 채로 이렇게 쉽게 작별해야 하다니. 올리브와는 어떤 추억도 쌓지 못하였다. 그래서일까 슬픔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에 더 미안한 마음이 든다. 올리브의 꽃말은 평화. 올리브와의 추억거리 대신 적어본 평화의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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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이 고개를 쏙 내미는 봄이 왔다. 어린잎 올라온 나무들 사이로 반짝이는 물결이 보이는 곳으로 햇살과 평화를 찾아 모여드는 사람들. 색색의 돗자리 위에서 책도 읽고 노래도 듣고 과일도 먹고 낮잠도 자는 계절이 왔다. 봄이 너무 좋다 나는, 따사로워서 니트 입은 것이 후회되어도. 선선한 바람에 어리고 얇은 버드나무 가지가 살살 흔들리는 걸 보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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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카페가 있다. 주방에서의 지글지글 다각다각한 소리 들으며 진저향 짜이티 한 모금과 바삭 부서지는 알루핫샌드 한 입. 레몬즙 한 번 뿌리고 사람들은 모두 조용하고 궁금한 작은 책 한 권 집어 들고 구석의 배려를 발견하는 곳. 뒤에는 양화한강공원이 있다. 마음이 푸근해진 채로 한 바퀴 산책하고 집으로 가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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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드디어 혼자를 조금 좋아하게 되었다. 혼자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리고 좋다는 걸 이제서야 문득 깨닫게 되었다. 욕심 부리지 않고 천천히, 내가 가진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오롯이 살피고 돌보는 혼자의 시간. 좋은 책과 좋은 공책, 연필과 펜만 내게 있다면 불안하지 않지 든든하지. 깨닫게 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도 결국은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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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보러 다니다 몸도 마음도 잔뜩 지친 날, 우연히 들어간 정갈한 식당에서 가지된장덮밥을 먹다가 옹골찬 행복을 느꼈다. 누렇게 우린 물을 마시며 스윽 둘러보니 창밖으론 열 내는 매미 소리. 옆자리 누군가는 무얼 한 입 먹고서 여름이다 여름~ 그랬다.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두 분은 요즘 하는 연애 프로그램 얘기가 한창이었는데, 자기는 젊었을 때 마음을 숨기느라 바빴고, 또 너무 무식하게 사랑했다며. 자기 마음을 부담스럽지 않게 하나하나 짚어가며 말할 줄 아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고, 저 마음이 어디에 가 닿으려나... 그랬다. 찾아오는 손님들은 모두 사장님과 친구였고, 낯선 어른들에 겁먹고 짖던 강아지는 처음 보는 아기의 손길에 얌전했다. 강아지를 데려온 손님은 차를 마시다 일어나 아기 옆에 앉아서 인사를 시켜주었다. 나는 밑반찬까지 다 비우고 나와서 식당 건너편 나무 무성한 벤치에 앉아 해와 바람을 좀 즐겼다.
초여름 숲 산딸나무
산딸나무
사조화 (四照花)
Cornus kousa
내가 다니던 학교 도서관 샛길에는 높다란 나무들이 심겨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어느 날엔 그 길로 등교를 하다가 희고 아름다운 꽃잎이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얼른 고개를 들어 이 청아한 꽃의 근원지를 찾아보았지만 초록 잎사귀들만 가득할 뿐 꽃잎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 더욱 신비로웠다. 그러다 며칠 후 과방에서 과제를 하던 중 잠깐 2층 외부 광장에 들렀다가 마주한 광경에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바람을 쐰다고 광장 펜스 쪽으로 다가갔더니 그때 봤던 꽃들이 무리를 지어 흐드러지게 피어서는 꼭 빛이 나는 것처럼 주위를 환하게 밝히고 있던 것이다. 광장 펜스 바로 아래가 도서관 사잇길이었는데, 특이하게 꽃들이 나무의 윗면에서만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 아래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2층 외부 광장에서도 펜스에 가까이 가지 않고서야 보이지 않는 위치였다. 이제껏 이런 장면을 놓치고 살았다니!
떨어진 꽃잎을 주워들고 부리나케 과방으로 돌아와 에피소드를 풀며 친구들에게 꽃의 미모를 연신 자랑했다. 청순하고 우아한 색감, 부드러운 선으로 그어진 세련된 실루엣, 가운데 달린 완두콩같이 동그란 포인트로 귀여움까지 갖춘 꽃. 이름도 모르고 좋아하고 있었는데, 담이 편지로 나무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이 꽃나무의 이름은 산딸나무야. 열매가 딸기랑 비슷해서 산의 딸기나무라는 의미래. 내 블로그 글들에 나 힘들어요 하는 게 묻어있는 걸 보고 담이 써준 편지였다. 담은 내가 늘 붙어있진 않아도 멀리 있진 않은 섬 같은 존재라고 해주었는데, 당시의 나는 섬 같은 아이라기보다는 섬에 사는 아이 같다고 스스로 생각하곤 했다. 반경 범위가 아주 좁은 땅에서 정해진 일을 반복하며 하염없이 바다 너머를 그리워하는 섬 아이. 코로나 기간으로 등교를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했기 때문에, 그 하루를 제외하고는 매일 일어나서부터 잠들 때까지, 밤과 낮이 뒤바뀐 채로, 혼자서 좁은 방 안에서 과제만 했다.
그리고 그 즈음부터 조그만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효창공원 콘크리트 길 귀퉁이에 스며든 연둣빛 이끼, 보도블럭 틈새를 비집고 나온 잎, 파마산 가루가 흩뿌려진 것 같은 도로가의 이팝나무, 구석진 곳에 제 마음대로 핀 들풀과 나팔꽃, 민들레, 자주 가는 카페 화단의 꽃 무더기. 그런 것들을 눈에 꼭꼭 담느라 등교하는 발걸음은 자꾸만 느려졌다. 그중에서도 도서관 사잇길을 지나 계단을 올라야지만 만날 수 있는 산딸나무꽃의 깨끗한 아름다움은 찰나의 기쁨을 선사해 주었다.
사실 산딸나무의 꽃은 가운데의 동그란 부분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희고 우아한 부분은 꽃잎이 아니라 꽃차례꽃대에 달린 꽃이 둘 이상의 집단을 이루어 피는 형태 를 감싸는 포꽃이나 꽃차례 아래에 달리는 잎, 또는 꽃받침잎처럼 생긴 것 이다. 꽃 수십 송이가 모여 조금 더 큰 공 모양을 만들었음에도 한 송이 한 송이의 크기가 워낙 작아서 눈에 잘 띄지 않고, 곤충들을 유혹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래서 포를 크고 아름답게 변신시켜 꽃잎처럼 보이도록 만든 것이다. 산딸나무꽃은 존재감이 미미한 본인을 보완해 줄 수 있도록 주변의 것을 최대한 활용하거나 변화시켰고, 결국은 곤충들과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에 성공하였다. 원래가 부드럽고 청순한 얼굴인 줄 알았는데 누구보다 영리하고 치열하게 탈바꿈한 결과라는 것을 알고 나니 더 경이로울 수밖에.
나는 졸업을 하고 나서도 학교 근처에서 2년을 넘게 살았고, 5월 끝자락이면 슬슬 산딸나무에 꽃이 피었을까 확인하러 광장에 들렀다. 산딸나무꽃을 보면 어쩔 수 없이 버거웠던 그때가 생각나고 서로를 챙기던 그때의 친구들이 생각나고, 한 템포 멈추고 후 숨을 고를 수 있다. 해의 반이 이만큼 지나갔구나, 작열하는 여름이 곧이겠구나. 5월 말에서 6월 상순, 이팝나무꽃이 지고 나면 산딸나무가 순백의 꽃을 피운다. 사조화(四照花)라고 부르기도 할 만큼 꽃이 피면 사방이 환하다. 가로로 층층이 포개어지는 것이 무리 지은 새 떼가 날개를 펴고 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새로 이사한 집은 다 좋은데 내가 이렇게나 좋아하는 산딸나무가 근처에 없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 대신 우연한 만남엔 기다리는 나에게 더 큰 기쁨을 가져다주겠지.
테이블 위 말없는 야자
테이블 야자
Chamaedorea elegans
Parlour palm
테이블 야자의 집을 바꿔 주었다. 테이블 야자는 친환경 행사에 갔다가 무료로 받게 된 아이다. 갈색 플라스틱의 간이 화분에서 몇 주를 키우다가 마음이 좀처럼 가지 않아서 화분을 바꿔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며칠 전에 새로 산 화분이 있기도 했다. 집 근처 꽃집에 방문해 분갈이를 요청드렸는데, 이건 분갈이를 할 의미가 없어요. 그냥 이대로 키우셔도 될 것 같아요. 라는 답이 돌아왔다. 분갈이는 몸집이 커진 식물을 더 큰 화분으로 옮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인데 내가 들고 간 화분은 간이 화분과 똑같은 사이즈라 전과 다를 게 없다는 뜻이었다. 그럼 얘는 분갈이를 언제 해줘야 하나요? 키우다 보면 분갈이를 해줘야겠구나 하는 때가 와요. 그때 해주시면 돼요. 알쏭달쏭한 대답에 잠시 고민했지만 한시라도 빨리 제대로 된 화분 속에서 키워야 제대로 사랑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한 번 더 요청드렸다. 못마땅해하시던 사장님은 느긋하고 능숙한 손길로 테이블 야자를 꺼내어 새 화분으로 금세 옮겨 심어 주셨다. 마무리하시면서는 조그만 돌 하나에 무당벌레 모형까지. 이렇게 화분을 꾸미는 거예요. 이러면 식물에 더 애착을 가지기 쉽죠. 애착을 가지지 못했던 것이 티가 났구나 싶어 조금 민망했지만 작은 무당벌레 모형 하나로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녹빛 화분으로 이사한 녹빛 테이블 야자는 훨씬 보기 좋은 모양새로 내 테이블 위에.
책상 위의 야자수라는 이름이라니. 생각해 보면 지금에서야 사무실 책상에는 고사리가, 집 책상에는 페페가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지만 올해가 되기 전까지 나의 어떤 책상에도 식물이 있던 적은 없었다. 하루의 3분의 1 이상은 평생을 책상 위에서 보냈으면서도 그렇다.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읽고 글을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그림을 그리고 문제를 풀고 누군가를 생각하고, 꾸벅꾸벅 졸기도 아예 엎드려 단잠을 자기도, 남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선을 딱 그어놓고 넘어오면 뒤진다며 영역 다툼을 하던 곳이 아래로 슬쩍 간식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다지는 곳이 되기도 하고, 나만의 유일 무대이자 툭하면 찾는 쥐구멍, 죽을 만큼 도망치고 싶은 곳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살기 위해 도망친 곳이기도 했다. 오래고 무구한 이곳에 여태껏 화분 하나가 함께한 적 없었다니. 진작에 있었다면 식물 네가 재미 좀 봤을 텐데.
그러나 어떤 흑역사를 보더라도 그들은 말이 없다. 사실 나에게 별 관심도 없을 테다. 그저 자기 나름대로 자라는 일에 집중하는 무심한 식물들. 나의 일방적인 외사랑을 전할 뿐이지만 그렇다는 것에서 오히려 위안을 받기도 했다. 내가 무언가를 돌보아줄 여력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 안도감이 있다. 어느 날 새로 난 잎을 발견하면 와악 차오르는 행복감이 있고, 그걸 나만이 발견해줄 수 있다는 사실에 느끼는 뿌듯함이 있다. 아주 조금씩이더라도 분명히 자란다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며 내가 알아주는 것처럼, 나 역시도 애정을 가지고 꾸준히 들여다본다면 어느 방향으로든 나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겠지 생각하곤 한다.
테이블 야자는 방금 물을 잔뜩 마셨다. 분갈이를 하고 나서 새 흙과 기존 흙이 잘 붙어 잔뿌리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물을 골고루 충분히 주는 것이 중요하다. 화분 아래로 흘러나올 때까지 물을 주며 생각했다. 내 안에도 약할지언정 뿌리가 있다. 반갑게 물을 빨아들이는 뿌리. 내 것으로 내 것으로, 그리고 밖으로, 무엇이 될지는 모르지만 나만이 만들 수 있는 형태를 그리며.
따뜻한 지구 음악
Mother Earth's Plantasia
식물 … 그리고 식물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따뜻한 지구 음악 (warm earth music for plants ... and the people who love them). 표지에 조그만 글씨로 적힌 앨범의 부제에서부터 이 앨범을 사랑하게 될 거란 걸 알 수 있었다. 43년만에 재발매된 Plantasia 앨범에는 빈티지한 초록빛의 LP와 함께 화분 안에 흙으로 덮어 두면 꽃이 자라는 시드 페이퍼, 마더 어스가 직접 쓴 식물 관리 가이드가 동봉되어 있다. 사랑스러운 앨범의 표지 그림은 일러스트레이터 마빈 루빈(Marvin Rubin)이 그렸다.
이 앨범이 만들어진 1970년대는 요가, 채식 등 정신 수양 활동이 인기를 끌던 시기였다. 꽃과 식물, 평화를 사랑하는 히피즘의 영향도 있었다. 사람들은 정원에서 키우던 식물을 실내로 들여왔고, 초록빛이 가득한 집안에서 마음을 달래길 원했다. 식물들은 몸집을 키우며 사람들의 공간을 무섭게 침범해 나갔고, 사랑에 빠진 식집사들을 끊임없이 생성했다.
같은 시기 LA에서 실내 식물 가게 마더 어스 플랜트 부티크(Mother Earth Plant Boutique)를 운영하던 린과 조 부부는 베스트셀러 ‘The Secrets of Plants’에서 힌트를 얻었다. 린과 조는 식물은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은 식물을 더 빠르고 아름답게 자라도록 도와준다는 책의 내용을 토대로 식물을 위한 앨범을 만들고자 했다. 초기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선구자인 모트 가슨(Mort Garson)의 손에 음악이 탄생했고, 부부는 이 앨범을 마더 어스의 판촉물로 활용했다. 마더 어스에 방문한 손님들은 식물, 그리고 그에게 들려줄 LP 한 장을 품에 안고 돌아갈 수 있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하지만, 시몬스 매트리스를 구매한 사람들 역시 마케팅의 일환으로 이 앨범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엔 출장을 다녀오는 바람에 일주일 만에 집에 왔더니 파티오가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물은 10일에 한 번 정도 주면 된다고 해서 괜찮겠지 싶었는데, 분명 꼿꼿하던 대가 쪼글쪼글해져서는 아래로 풀썩 내려간 모양이다. 큰일이 났다 싶어 가방을 풀기도 전에 허겁지겁 파티오 물부터 줬다. 물을 잔뜩 주었는데도 살아날 기색이 없어 보여 걱정하며 급한 대로 나무젓가락 부목도 심어 주었다. 부목을 심어 두니 대가 그럭저럭 세워지긴 해서 우선 안심하고 짐을 풀었다. 파티오라금은 몸통이 무거운 편이라 지주대를 세워두는 것이 좋다. 그리고 문득 놀랐다. 나에게도 내가 아닌 무언가가 잘 자라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기다니.
린과 조 부부도 아마 비슷한 마음이지 않았을까. 조그맣고 신비한 화분 속 생명들이 이 음악을 듣고 행복하게 잘 자라 주었으면. 사람들의 근거 없는 믿음과 바람에서 시작되었지만, 신시사이저의 높고 얇은 음은 전기 신호를 통해서 식물에게 정말 전달될 수 있을 것만 같다. 음악을 들어보시길. 린과 조 부부의 식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앨범을 만들고 나누는 사람들의 애정과 온기는 이미 그들의 식물에게 충분히 전달되었을 테다.
식물은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거예요.
식물은 당신의 집을 아름답게 해줄 거예요.
식물은 공기를 쾌적하게 해줄 거예요.
식물은 친구를 기분 좋게 해줄 거예요.
식물은 절대 당신에게 뭐라 하지 않아요.
식물은 절대 러그를 더럽히지 않아요.
물을 준다면 식물은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식물은 무언가 얘기할 거리를 줄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베고니아는 늘 그 자리에 있답니다.